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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머 겸 크리에이티브디렉터 남궁연 학력 집안 이야기가 흥미롭네요.

사실 한동안 삐딱하게 살았던 것이나 남궁연이 이혼에 대하여 장난(?)스럽게 말한 것도 모두 남궁연 아버지 남궁식이나 윤보선 전대통령 집안때문이었죠(남궁연 윤보선 관계 외종손, 윤보선 동생의 손자)

 

남궁연의 어린 시절을 제대로 알아야 남궁연 부인 한미경과의 결혼 생활을 이해할 수가 있죠.

 

# 목차

* 남궁연 이혼에 대한 장난(?)스러운 발언

* 남궁연의 어린 시절

* 남궁연이 일진, 주먹이 된 이유

* 남궁연 아버지 남궁식의 신고로

* 남궁연 학력이 고졸이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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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머 남궁연(본명)은 1967년 5월 1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남궁연 고향 서울). 올해 49살이죠(남궁연 나이).

(남궁연 종교) 기독교(개신교)

(남궁연 학력 학벌)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고등학교 졸업, 감리교신학대 중퇴

(남궁연 프로필 및 경력) 1987년 그룹 백두산 세션 멤버로 데뷔

 

1988년 윤상, 손무현 등과 그룹 활동

1989년 한일 재즈트레인 한국대표

2002년 남궁연 악단의 1집 앨범인 '너도 당해봐'를 발표

2008년 동덕여자대학교 방송연예과 강사

2012년 스위스 다보스포럼 한국의 밤 총괄기획, 감독

 

 

* 남궁연 이혼에 대한 장난(?)스러운 발언

 

남궁연은 직업이 무척 많은 것처럼(가수, 작곡가, 드럼 연주자, 음반 프로듀서, 방송인, 배우, 공연기획가, 공연연출가 등) 그의 결혼 생활에 대한 말들도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남궁연 이혼'을 사실처럼 믿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남궁연은 이혼에 대하여 무척 '건방진' 말을 한 적이 많습니다.

 

남궁연 사진

 

남궁연: "외할아버지가 재미있는 분이셨어요. 그 옛날에 외국에서 공부하고 늘 양복 입고 그러셨어요. 저 어릴때 부터 할머니가 서너 분쯤 계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남자는 능력만 있으면 결혼을 여러 번 하는 게 멋진 삶이구나'라는 이상한 생각을 했어요."

 

남궁연: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니까 결혼하고 애낳는게 공포스럽더라구요. 결혼할 때도 이건 아닌데 싶어서 뒷목이 뻐근했어요.저 결혼식 때 울었다니까요. 사실 처음에 처가십에서 (우리 결혼을) 반대할 때는 극복하는 맛이 있어서 좀 괜찮았는데, 막상 승낙이 떨어지니까(웃음)..."

 

남궁연: "아내와 요즘 '멋있게 이혼하는 방법'에 대하여 상의를 하고 있어요. 우리 사이가 나빠서 그런 게 아니고, 서로의 인생관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죠. 나는 나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고, 그 친구는 종교에 빠져서 수녀처럼 살고시퍼 하거든요. 그래서 재산 떼어주고 혼자 살게 하는게 여자를 위해서 오히려 나은 것 같아요."

 

남궁연: "제가 실은 제2의 조영남이거든요. 서로 닮은 점이 많아요. 히트곡 없이 먹고 살고, 또 신학 공부를 했고, 그리고 하는 짓거리도 비슷하고. 저는 정말 그 형(가수 조영남) 따라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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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발언들을 살펴보면, 남궁연은 패륜아 같습니다.

마치 이혼을 멋진 것처럼 착각해서 '반드시 이혼하는 것이 삶의 목표'인 것처럼 느껴지니가요.

 

그런데 남궁연의 속마음이 이럴까요?

남궁연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어린 시절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남궁연의 어린 시절

 

남궁연은 윤보선 전대통령의 외종손입니다.

(남궁연 외할아버지가 윤보선 전대통령의 동생인 윤완선(이름)이었음)

(세간에 남궁연이 윤보선 외손자라는 루머가 있는데, 이는 정확한 것이 아님)

 

또한 남궁연 아버지가 바로 유명한 공학자 남궁식(직업 서울대 화학공학과 교수 역임)입니다.

 

그리고 남궁연 어머니 윤상경은 이화여대 피아노과를 나왔고, 이모 윤연경은 이대 음대학장을 지내시고 했습니다.

친가나 외가 모두 소위 말하는 '빵빵한 집안'이죠.(남궁연 집안)

 

하지만 남궁연의 어린 시절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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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연 과거 사진

 

남궁연: "부모님은 기독교 원리주의자에 가까우셨다. 가정교육은 경직되었고, 집안의 여자들에게는 검소함이 몸에 베개 하기 위하여 쪽찐 머리에 개량 한복을 입도록 했다."

 

남궁연: "밥상머리에서는 가족들의 대화는 없고, 언제나 성경 교리와 평소의 품행에 대한 지적들만이 존재했다."

 

남궁연: "한번은 내 친구가 집에 놀러와서 함께 밥을 먹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평소 부모님께서 강조하셨던 식사 예절을 어겼다. 그런 친구를 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시선속에는 멸시와 조롱만이 가득했다."

 

결국 어린 나이의 남궁연은 부모에 대한 반발심으로 엇나가게 됩니다.

게다가 중학교 들어가기 전에 어린 남궁연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 남궁연이 일진, 주먹이 된 이유

 

남궁연: "초등학교 6년간 늘 맞고 다녔다. 그러다가 중학교 들어가기 전에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여자친구와 이야기하다가 (학교 일진들로부터) 또 맞았던 것이다. 그때 문득 '내가 이렇게 크면 나중에 내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도 못 지켜주겠구나'라는 공포가 들기 시작했다."

 

남궁연: "이후 중학교에 들어가서 나는 원래 싸움을 잘하는 애라는 포장을 시작했다. 정말 악으로 깡으로 막 덤비고 싸움을 시작했다. 하룻밤 사이에 리스트에 오른(주먹으로 유명한) 아이들을 찾아 다니며 싸웠던 적도 있었다."

 

결국 남궁연은 고등학교때 신촌에서 알아주는 주먹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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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연 아버지 남궁식의 신고로

 

그리고 남궁연 아버지가 아들을 직접 경찰에 신고하기까지 합니다.

 

남궁연: "고등학교 때 나만큼 말 안 듣는 애도 없었다. 나는 카메라 출동에도 나왔을 정도다. 날짜도 정확히 기억한다. 1984년7월9일이었다."

 

남궁연: "그때 음악을 너무 하고 싶어서 친구들과 함께 나이트클럽을 다녔다. 당시에 사촌형의 대학 학생증의 사진을 바꿔 가지고 대학교 2학년생이라고 속이고 클럽을 다녔다. 그런데 당시 대학교수였던 아버지가 직접 나를 경찰서에 신고하셨고, 나는 유치장 안에서 내가 나오는 '카메라 출동'을 보게 됐다."

 

남궁연: "당시 내가 나온 MBC 뉴스데스크의 '카메라 출동은'은 '두발자율화'가 시작된 이후 첫 폐해 사례로 소개가 되었다."

 

당시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남궁연을 나이트클럽을 출입하는 타락한 청소년의 사례로, 그리고 남궁연 아버지는 아들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자신의 손으로 아들을 신고한 대학교수의 엄한 교육의 본보기로 소개됩니다.

 

남궁연과 아버지의 불화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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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연 학력이 고졸이 된 이유

 

이런 불화때문에 남궁연은 대학 진학도 하지 않습니다.

 

남궁연: "그 사건(아버지의 경찰 신고)로 아버지 얼굴에 유성매직 수준의 먹칠을 해야겠다는 독한 결심을 했다. 그래서 한 대학에 합격했지만 신체검사를 받지 않아서 대학을 결국 가지 않았다."

 

이후 남궁연은 목사가 되기 위하여 감리교 신학대에 입학하게 됩니다.

 

이 전후로 방위에 입대해서 제대하기도 했죠.

(남궁연 군대 1988년 입대, 1990년 제대)

 

 

이렇게 남궁연은 고졸 학력으로(나중에 깨달음을 얻고 신학대를 중퇴함) 20살때부터 드럼을 배우면서 음악을 시작하게 됩니다.

1987년 록밴드 백두산의 세션맨으로 처음 TV에 얼굴을 보이기도 했죠(정식 멤버는 아니었음).

 

그러다가 1993년에 처음으로 가수로 데뷔하게 되는데, 이때는 이미 결혼을 한 뒤였습니다(남궁연 결혼).

 

 

 

그런데 이때 결혼하게 된 사연과 뒷날 남궁연 아버지와 아내 한미경(이름)의 사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네요.

 

드러머 겸 크리에이티브디렉터 남궁연 아내 한미경과의 결혼 생활이 흥미롭네요.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남궁연이 이혼을 장난스럽게 언급하는데, 아마 그만큼 자신(?)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남궁연 부인 한미경은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기인이라고 할 수 있죠.

(남궁연 결혼 생활)

 

# 목차

* 남궁연 부인 한미경 첫만남과 러브스토리

* 남궁연 결혼 이후 생활고에도

* 남궁연 아내 한미경의 기행

* 남궁연의 뒤늦은 후회

* 남궁연 한미경과 더불어(남궁연 근황)

 

* 남궁연 부인 한미경 첫만남과 러브스토리

 

남궁연: "아내를 5년동안 따라다녔다. 아내는 같은 교회다니던 2살 연상의 누나였다."

 

남궁연 부인 한미경 나이차이 2살

남궁연 부인 직업 및 학력 - 성악가(서울대학교 음대 성악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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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남궁연 학력이 고졸이었기에, 처가집에서는 이들의 결혼을 반대합니다.

 

남궁연: "처가 집안의 반대로 맘고생을 많이 했다. 3년 동안 결혼하게 해달라는 새벽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남궁연: "끝까지 반대하시던 장인어른께서 갑자기 결혼을 찬성하시더니, 우리의 결혼을 서둘렀다. 알고보니 한 대학병원에서 폐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 결혼 후에) 그것이 오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남궁연이 결혼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궁연 25살때 결혼)(남궁연 배우자 와이프 한미경)

 

 

참고로 남궁연에게 아이는 없습니다(이 부분은 밑에서 추가 설명).

(남궁연 자녀(자식) 없는 이유)(남궁연 가족관계)

 

남궁연 사진(남궁연 부인 사진은 밑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동덕여대 강의할 때를 제외하고는 공식 행사에 전혀 참석하지 않음)

 

 

* 남궁연 결혼 이후 생활고에도

 

결혼 이후 남궁연은 한때 잘 나가다가 망하게 됩니다.

 

남궁연: "90년에 제대를 했는데, 가수 윤상이 찾아와서는 '여기 젊음이'라는 TV프로그램의 음악을 하자고 제안하더라. 그 일을 하면서, 얼마뒤에는 '특종 TV연예'에서 배경 음악을 맡았고, 또한 드라마 '종합병원'의 음악을도 제작했다."

 

남궁연: "그러자 '이제 나의 시대가 오는구나'라는 착각에 빠지게 되었고, 은행에서 1억원을 대출해서 집에다가 스튜디오를 차렸다. 그런데 한번에 일이 끊기더라."

 

남궁연: "3년동안 빚을 갚기 위하여 정신이 없었다. 내 수입은 클럽에서 연주하면서 받는 돈 20만원이 전부였다. 아내가 성악 레슨을 해서 겨우 먹고 살았다."

 

남궁연: "하루는 우리 두 사람의 주머니를 뒤져 보니까 달랑 500원이 나온 적이 있었다. 그 돈으로 새우깡과 콜라를 사 먹었다. 아직도 그 사건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는다. 돈이 없어도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으니까."

 

남궁연: "남들은 나에게 "너는 고졸이라도 (집안) 빽 있고 돈 있으니까 지금의 내가 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난 (부모님으로부터) 돈 한 푼도 안 받았다. 오히려 동생 미국 유학 비용 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놈이 지금은 변호사를 하고 있다."

 

실제로 남궁연은 '좋은 가문 자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그래서 별다른 고생없이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았다고 착각할 수 있죠.

 

하지만 남궁연과 부모님의 사이를 보면, 결코 집안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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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연 아내 한미경의 기행

 

이런 각박한 부모님과의 사이에서 남궁연 아내 한미경(이름)은 한줄기 빛이 되어 줍니다.

 

남궁연: "집사람이 음식 솜씨가 없는 편이다. 그래서 하루는 아버지께서 며느리에게 "식당에서 먹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고 돌려서 핀잔을 주신 적이 있었다. 그러자 집사람이 아침 식탁에 앉은 시아버지에게 "어서 옵쇼!"라고 크게 인사를 했다."

(식당 분위기를 내기 위하여)

 

남궁연: "또한 하루는 국을 떠먹는 아버지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집사람이 "아버님, 짜면 미시고 싱거우면 당기세요"라고 했다."

(원래 뜻은 짜면 찌개로 드시고, 싱거우면 국으로 드시라는 뜻임)

 

남궁연: "운전학원 강습을 받는데, 집사람이 첫날 과속을 했다. 놀란 운전학원 강사가 "서, 서!"라고 외쳤고, 집사람은 차를 세우는 대신에 운전대를 잡은 채로 그 자리에서 '서'버렸다. 결국 운전학원에서 그날 바로 쫓겨나 버렸다."

 

 

남궁연 부인 한미경의 일화가 무척 재미있네요.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도 많이 엉뚱해 보이는데, '경직된 가정'에서 살았던 남궁연은 오히려 이런 면이 좋아서 그녀를 쫓아다닌 것이죠. 아마 아내의 다소 엉뚱하고 기상천외한 생각과 행동들이 남궁연에게 숨 쉴 구멍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제일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남궁연은 이혼에 대하여 무척 가볍게 말합니다.

이것은 남궁연이 과장해서 한 발언으로, 그와 아내의 결혼 생활을 제래로 모르면 이해할 수가 없는 부분이죠(남궁연 이혼사유, 남궁연 이혼이유 등이 루머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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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연의 뒤늦은 후회

 

그러다가 남궁연은 부모님에 대한 잘못을 깨닫게 됩니다.

 

남궁연: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3년의 마지막해인) 1995년 8월, 어머니께서 폐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으셨다. 어머니에게 관심이 없었던 내가 불효자다. 건강검진만 받았어도 살 수 있었으니까."

 

남궁연: "어머니가 암 선고를 받은 날 삭발을 했다. 감옥 가면 머리를 깎는 것처럼 이 생에서는 죄인이니까 이렇게 산다. (나는 죄인이니까) 앞으로도 평생 머리를 기르지 않을 것이다."(남궁연 삭발 이유)(남궁연 대머리가 된 것은 탈모 원인이 아님)

 

결국 남궁연 어머니가 사망하고, 3년뒤에는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남궁연: "그제야 부모님에게 너무 삐딱하게만 굴던 내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노래가 왜 나왔나 생각을 해 보니까, 부모님 생각이 돌아가신 날만 (생각)나는 게 아니더라."

 

 

남궁연의 말처럼 뒤늦은 후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죠.

비록 남궁연이 경직된 가정교육으로 삐딱하게 나가기는 했지만, 그 역시 그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이었으니까요.

 

참고로 남궁연 부모가 자식을 조금 더 사랑으로 감싸주었더라면, 이들 가정 역시 무척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그러므로 부모된 입장으로서는, 항상 본인의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이 맞는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면, '사랑이 오히려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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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연 한미경과 더불어(남궁연 근황)

 

이후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남궁연와 한미경은 아내를 낳지 않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남궁연은 오랫동안 음악과 공연 기획 등의 일을 하다가 2008년 교수로 임용이 됩니다.

이때 한미경 역시 남궁연과 함께 동반 교수가 되었죠.

 

남궁연: "그동안 국내 여러 대학을 돌며 150여 차례 이상 특강을 해왔어요. 특강의 반응이 좋아 정규 강의 제안도 여러번 받았지만, 매번 고졸 학력이 막판에 걸림돌이 되어서 성사되지는 못했어요. 그러다가 이번(2008년)에 동덕여대에서 파격적으로 날 발탁했어요."

 

남궁연: "제가 신정아 학력 위조 사건 이후 최대 수혜자가 아닌가 하네요. 그동안 고졸 학력 때문에 강의를 못 맡았는데, 작년(2007년)에 학력 위조 파문이 크게 일어난 이후에, 우리 사회의 학력에 대한 시선이 좀 바뀐 것 같아요. 동덕여대쪽에서도 저에게 "시대가 바뀐 만큼 졸업장이 아니라 실력으로 인정받는 사람을 강단에 세울 필요를 느꼈다"라고 하시더라구요. 참 나,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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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남궁연은 부인 한미경과 함께 2인 1조로 강의를 맡게 됩니다(남궁연 아내는 그동안 성악 레슨을 하기도 했지만, 결혼 이후 최초의 공식적인 외부 행사였음.).

'뮤지컬 매스터 클래스'란 과목에서 남궁연이 '음악의 이해'에 대해 강의하고, 한미경이 발성을 가르치게 되죠.

 

남궁연이 시대가 바뀌면서 학력보다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 더 대우를 받는 흐름을 잘 탄 것 같네요.

 

남궁연: "제가 비록 고등학교 졸업이 전부이지만, 사회 공부를 많이 했고 또한 평생 공부를 하겠다는 각오로 살아 왔어요. 동덕여대에서 어렵게 기회를 주신 만큼 최선을 다해 멋진 강의로 학생들에게 보답하고 싶어요."

 

 

이후 남궁연은 교수로서의 강의는 물론이고, 연기자(2014년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 라디오 진행자(2014년 5월 ~ 8월 라디오 3.0 남궁연입니다), 스위스 다보스포럼 한국의 밤 총괄기획 겸 감독(2010년), 대학토론배틀(2013년) 등 여러가지 활동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비록 '고졸'이지만, 대학을 나온 사람들보다 더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인정받고 있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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